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사카 전투 (문단 편집) == 평가 == 이에야스는 이렇게 눈엣가시인 도요토미가를 완전히 멸망시켜 힘을 과시함으로써 다른 다이묘들은 도쿠가와에게 충성을 맹세할 수 밖에 없었고 자신의 후계자 히데타다에게 권력계승을 하며 [[에도 막부]]의 통치를 확고히 하게 된다. 이 직후 [[겐나엔부]]를 선포, 전란이 모두 끝났다는 것을 알렸고, 일국일성 등 다이묘들이 제멋대로 군비를 확장하는 것을 규제하며 제법 강력한 중앙집권을 누리게 된다. 이후 [[매튜 페리(군인)|매튜 페리]]가 오기 전까지 일본은 250여년의 평화를 누렸다. 이 전투로 유명해진 것은 역시 오사카 오인중이다. 비록 고용된 입장에다가 각자 다른 속셈[* 고토 마타베는 자신의 전 상관 쿠로다 가문에 원한을 아카시 테루즈미는 기리스탄(기독교)이기에 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도요토미 가문을 통해 종교 허락을 받기 위해 모리 카츠나가는 개인적으로 도쿠가와에 대한 원한, 쵸소카베 모리치카는 자신이 서군에 가입했다가 패배후 가이세키 당하고 아버지 모토치카에게 먹칠을 했다는 마음이 있었고 이 전투 승리후 이전 봉지를 다시 받는 것을 목표로 했다. 사나다 노부시게는 돈을 받긴 하였으나 이전부터 도요토미 히데요시 휘하에 있었고 은혜가 있었기에 참여한 것이다.]을 가지고 수락, 도쿠가와 가문이 더 싫어서 항복하느니 주군 히데요리에게 끝까지 충성을 바치며 강력한 적에 맞서 멋지게 싸우다 갔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물 먹이고 죽일뻔한 [[사나다 노부시게|사나다 유키무라(노부시게)]]는 이것으로 에도 시대는 물론 현재에도 최고급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도쿠가와 측에서도 그를 최고의 무장으로 평가했기에 그를 띄우는 데 거부감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다케다 신겐]]처럼 이에야스를 애먹였기에 띄워준 부분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 때문에 [[모리 카츠나가]]와 같은 2인자 다른 인물들이 저평가 받는 부분도 있다. 특히 모리 카츠나가는 최후의 돌격에서 시선을 이끌며 자신에게 병력이 몰리도록 하는 맹활약했는데 노부시게에게 그게 다 넘어가 버렸다. [[코에이 테크모]]에 따르면 사나다 노부시게의 그림자에 가려진 모리 카츠나가를 가리켜 누군가 '안타까운 후세. 사나다는 이야기하지만 모리는 이야기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도쿠가와뿐만 아니라 도요토미 측도 방해가 되었다는 것도 특이하다. 전쟁의 ㅈ자도 모르는 수준의 제대로 모르는 자들이 사나다 마사유키로부터 전술의 지식을 전부 이어받은 사나다 유키무라(노부시게)처럼 전쟁에 잔뼈가 있는 그들의 계획을 매번 방해했기 때문. 요도도노와 오노 하루나가 등도 마찬가지로 악역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래도 히데요리 생존설이 있는 걸 보면 역사의 동정 정도는 받은 듯하다. 히데요리부터 노부시게 등 각종 인물들이 생존설이 있다. 특히 [[아카시 테루즈미]]는 아예 생사불명이다. 모리치카는 도주하다가 체포돼서 죽었기에 생존설이 없는 듯. 한국에도 이순신 생존설이 있듯 맹활약하다가 쓰러진 무장들에 대한 동정 섞인 설일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